마지막 남은 문화재급 안영근 선생 함석세공 조각가 김양수 기자 2019.11.17 12:48



안영근 선생 함석세공 조각가는 경남 김해시 동상동에서 태어나 어릴 적 동내 친구들과 냇강에서 얼음 지치기를 하기 위해 스케이트를 만들려고 철사를 구하기 위해 함석세공 공장에 갔다가 물동이와 바케스를 만드는 것을 보고 마음을 빼앗겨 상동면 (남정운씨) 함석세공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주인에게는 항상 머리가 좋고 일 잘 한다는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이에 본 지는 마지막 남은 문화재급 안영근 선생 함석세공 조각가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 경상남도 지방문화재 자료 제355호로 등록된 창녕군 대지면 성씨고가 성혜림 생가에 설치된 안영근 함석조각가가 만든 봉황물받이  © 시사우리신문편집국



안영근(78세) 조각가는 1961년 창녕으로 이사를 와 창녕시외버스 터미널 옆에서 “김해 함석공업사”라는 간판을 걸고 물두레,바케스,물동이,호롱,등장,다라이,물조리,모기잡는 기구,한복옷깃모형,주택물받이,간판,반지형마늘깍기 등 물건이 귀했던 시절에는 생활에 필요한 기구와 농기구를 직접 창작해 만들어 냈다.

 

안 조각가는 "농민이 무엇이 필요한지 항상 연구하고 창작하는 것이 항상 즐거웠다"고 했다.

 

60년대 쥐가 많았을 때 대농가에서 함석 벼 뒤지를 많이 만들었다. 새마을운동으로 농촌 지붕개량사업으로 지붕 물받이와 물도이 작업 일로 경남 일대와 경북,대구,부산,서울까지 일을 다닐 정도로 일이 많았다.

 

개발품인 반지형 마늘까기는 인기가 폭발적이였다. 제품을 생산하느라 밤을 세웠고 인근 밀양 등지에서 마대채로 사가기도 했다.

 

안영근 함석조각가가 창작한 기와집 용마루깃,추녀깃,특히 봉황물받이는 작품이 문화재급이다. 궁궐에 있는 것 보다 더 화려하다. 입과 부리 벼슬의 선이 아름다고. 눈은 봉황의 눈동자에 유리구슬을 넣어 광채를 나게 했다. 날개에는 우아한 선을 주고 날개사이에 곡과 주름을 잡아 봉선화 잎처럽 바같 선을 표현해 작품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안영근 선생의 함석조각은 우리 전통 기와집에 마지막 치장이고 건물의 백미이다. 또 비가 오는 날 이면 봉황의 입에서 떨어지는 낙수 물 소리와 물을 바라보면 누구나 시인이 되게 한다.

 

봉황물받이는 영남지방에서 입소문을 타고 문화재 건축물과 고가,문중재실,개인별장,사찰 등에 설치했다. 

 

IMF(1997년) 때 국내 함석자재 품귀 현상으로 작업을 할 수 없었다. 지인의 소개로 일본 후코카로 건너가 2년간 함석 일하면서 일본 함석세공 장인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대우를 더 잘 해줄테니 한국에 못나가게 했다고 한다.

 

안영근 조각가는 "전통문화 보존과 우리문화 가치 보존을 위해 계승 발전 할 후계자가 없어 함석세공 문화예술의 맥이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요즘 안영근 조각가는 건강문제로 간단한 작업만하고 있는것으로 전해져 인근에서 작업장을 찾는 단골들은 솜씨가 너무 아깝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기사입력: 2019/11/17 [12:48]
최종편집: ⓒ 시사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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